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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2부 ― 떠나는 날의 약속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2. 03:07반응형
리안이 탄 작은 여객선은 바람의 결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엘리아르도의 푸른 해안선은 점점 작아졌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선 위에 그가 살던 집의 지붕이 조그맣게 점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점을 향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조개껍질 목걸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빛은 잠시 바다 위를 비추었다.
갑판 위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대륙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상인, 어부, 유학생, 그리고 꿈을 좇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리안처럼 가벼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부터 갑판에 나와 있었다. 파도 위로 부서지는 빛을 바라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저 빛 끝에 내 꿈이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바람이 날 부를까?”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축구하러 가는 거야?”
뒤돌아보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 낡은 가방, 그리고 왼손에는 헝겊으로 감싼 공 하나.
“응. 너도?”
소년은 씩 웃었다.
“그래. 난 카이. 대륙 북부의 ‘루체 FC’ 테스트를 보러 가는 중이야.”
“난 리안. 엘리아르도에서 왔어.”
“엘리아르도? 거기 축구 팀이 있긴 해?”
리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없어. 그래도 매일 바람이랑 연습했어.”
카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피식 웃었다.
“이상한 녀석이네. 하지만 그런 애가 가끔 대단한 일을 하기도 하지.”두 소년은 갑판에서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파도에 배가 흔들릴 때마다 공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었다. 그러나 리안은 매번 정확히 공의 위치를 맞춰냈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고 몸을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넌 공이 아니라 공 주위를 보는구나.”
“응. 공은 바람을 타고 움직이니까.”
“하하, 그럼 바람한테 패스라도 해볼래?”
리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근데 바람은 패스보다 빠르니까, 넌 준비 잘 해야 해.”그들의 공놀이는 금세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배의 선원들마저 멀리서 박수를 쳤다. “저 녀석들, 꽤 재밌는데?” “저런 아이들이 나중에 리그에서 날아다니는 거야.” 리안은 얼굴이 빨개졌지만, 마음은 들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바람 아닌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았다.
밤이 되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별빛이 물 위에 비치며 흔들렸다. 리안과 카이는 선실 옆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안, 넌 왜 축구를 해?”
“그냥 좋아서. 공을 찰 때마다 바람이랑 같이 나는 것 같아.”
“그럼 너한텐 축구가… 날개 같은 거네.”
“응. 카이 넌?”
카이는 잠시 하늘을 보았다.
“난 이기기 위해서 해. 언젠가 내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거든.”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우리 둘 다 하늘로 가는 거네.”그 순간 배가 크게 흔들렸다. 바람이 바뀌고, 갑판 위로 물보라가 들이쳤다. 선원들이 고함을 질렀다. “폭풍이다! 돛을 내리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은 허둥지둥 달려갔다. 하지만 리안은 갑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동자에 번개가 비쳤다.
카이가 소리쳤다. “야, 들어가야 해!”
“아니, 괜찮아! 이건 ‘바람의 시험’이야.”
그의 말에 카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바람이 사람을 시험해!”
“이 바람은 내가 진짜로 축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리안은 빗속에서 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배의 난간을 향해 찼다. 공은 번개 빛 속을 가르며 솟아올랐고, 한순간 완벽한 포물선을 그렸다. 파도는 그 아래에서 미친 듯이 솟구쳤지만, 공은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공을 품고 있었다.
그걸 본 카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쳤구나, 너.”
리안은 젖은 얼굴로 웃었다.
“아니, 살아 있잖아.”폭풍은 이내 지나갔다. 새벽이 찾아올 때, 하늘엔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었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리안은 손을 모아 태양을 향해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바람님.”배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리안은 낯선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엘리아르도의 소금기 섞인 바람이 아닌, 도시의 매캐한 냄새. 수십 개의 깃발이 휘날리고, 멀리서는 경기장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는 손을 움켜쥐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세상인가.”카이가 짐을 메며 웃었다. “어서 와, 대륙의 바람 속으로.”
리안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은 달랐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리안, 멈추지 마. 이제 진짜 바람이 시작이야.”
그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발끝에 공을 굴리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끝에서 새로운 여정의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곧, 한 시대의 전설이 될 첫 숨이었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