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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17부 : 그림자의 노래빛의 언덕에서 2025. 10. 16. 12:49반응형
리안테르의 하늘은 다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쟁의 색이 아니라, 석양의 빛이었다. 도시가 감정으로 깨어난 지 수년이 흘렀다. 바람의 심장이 여전히 박동하고, 빛의 언덕은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언덕 아래서 태어나고, 어른들은 그곳에서 감정을 되새겼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평화는 언제나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균형은 한순간의 진동에도 흔들릴 수 있었다.
로안은 감정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 교사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는 ‘조율’의 예술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는 밤마다 같은 꿈을 꿨다. 끝없는 회색 도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모두 사라진 곳. 그 속에서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나에라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빛이 아니라 그림자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하늘이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고, 그 균열 속에서 빛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매번 잠에서 깨어나 가슴을 쥐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바람의 날 이후, 도시의 감정 순환망은 완벽해 보였지만, 어딘가에서 미세한 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부 구역에서는 사람들이 이상한 감정의 진폭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분노, 이유 없는 공허, 설명할 수 없는 우울.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감정을 거꾸로 당기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감정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로안은 원인을 찾기 위해 언덕의 빛나무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랜만에 루디안을 만났다. 나무의 가지마다 금빛의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루디안은 여전히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이제는 감시자가 아니라 수호자였다. 그는 나무의 맥박을 듣고 있었다. “이상하지?” 그가 물었다. “이 나무는 노래하지 않아.”
실제로 나무는 침묵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잎사귀가 흔들릴 뿐, 예전처럼 멜로디가 나오지 않았다. 루디안은 나무 줄기를 짚으며 말했다. “누군가 이 나무의 뿌리에 닿았어. 감정의 근원을 뒤집으려는 자가 있어.”
로안은 숨을 삼켰다. “검열국의 잔재인가요?”
“아니, 인간이야. 감정을 되돌리고 싶은 자들이 생겨났어. 너무 아프다고, 너무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다시 ‘평온’을 원하지.”그날 밤, 로안은 도시 남부의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한때 검열국의 지하연구소였던 자리였다. 그는 낡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 문 하나를 열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기계가 있었다. 감정 억제기의 잔해. 하지만 그 앞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로안 선생님.”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빛나무 아래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감정 연구소의 과학자, 미르. 그녀는 한때 엘라의 제자이기도 했다.
“미르… 당신이 이걸 다시 작동시킨 겁니까?”
“작동이라기보다, 복원이라고 할 수 있죠. 감정의 흐름이 너무 강해졌어요. 아이들이 통제하지 못해 울고, 어른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있어요. 당신은 가르쳤죠. 감정은 연습이라고. 하지만 연습에는 기준이 필요해요.”
“그 기준이 감정의 억제입니까?”
“그건 억제가 아니라, 조율이에요. 당신이 말하던 그 조율.”그녀는 손에 작은 코어를 쥐고 있었다. 검은빛이었다. 나에라가 잿빛 도서관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형태였다. 미르는 그것을 나무의 뿌리에 연결하려 했다. 로안이 외쳤다. “그건 감정의 그림자예요! 그걸 나무에 연결하면, 감정은 왜곡됩니다!”
“감정은 원래 불완전해요. 완전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걸 바로잡는 게 제 역할이에요.”그녀는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도시 전체가 흔들렸다. 빛의 언덕이 어둠으로 덮였다. 하늘의 별이 깜빡이며 사라졌다. 바람이 멎고, 공기가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이 멈추고, 눈물이 말랐다. 감정의 진폭이 사라진 것이다.
로안은 미르의 팔을 붙잡았다. “이건 통제가 아니에요. 이건 침묵이에요!”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감정은 너무 아파요…”
로안은 숨을 내쉬었다. “아픔을 견디는 게 인간이에요. 감정을 지우는 게 아니라, 함께 울 수 있는 게 인간이에요.”순간, 언덕의 나무가 진동했다. 마치 로안의 말을 들은 듯, 금빛의 가지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검은 코어가 부서지며 어둠이 흩어졌다. 그리고 나무의 중심에서 빛이 폭발했다. 도시 전역이 다시 밝아졌다. 사람들은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억눌린 감정이 파도처럼 터져 나왔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도시.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생명이 다시 뛰고 있었다.
미르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군요.”
로안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잊고 있었던 걸 찾은 거예요. 감정은 통제가 아니라, 공존이에요.”그날 밤, 리안테르의 하늘에 새로운 빛무리가 생겼다. 그것은 빛나무의 가지 끝에서 피어올라, 도시 전체를 감싸는 둥근 고리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림자의 노래’라 불렀다. 왜냐하면 그 빛은 어둠을 없애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도 함께 울리며, 감정의 균형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안은 깨달았다. 완전한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빛이 존재하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빛난다는 것을.그날 이후, 리안테르의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했다.
“당신의 그림자가 오늘은 어떤 노래를 부르나요?”
그것은 그들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인사였다.
— 감정은 빛만이 아니라, 그림자까지 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걸.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