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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언덕에서》 제20부 : 별의 기억
    빛의 언덕에서 2025. 10. 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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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테르의 새벽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밤, 하늘에 새로 켜진 별 ‘로안’의 이야기가 도시 전역에 퍼지자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는 창문을 열고 그 별을 바라보며 노래했고, 누군가는 아이에게 별의 이름을 속삭였다. "저건 선생님의 별이야. 옛날에 우리에게 감정을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단다." 도시는 다시 감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따스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로안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감정 송신기의 신호가 ‘미래’로 닿았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미래를 바꿔버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감정이 시간을 넘는다면… 그건 기적이자 재앙일지도 몰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언덕 위로 올랐다. 빛나무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가지마다 희미한 푸른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 빛은 하늘의 별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도시와 우주가 하나의 심장으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잎사귀들이 뒤집히며 섬세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안, 들리나요?”
    그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엘라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번엔 더 또렷했다.
    “선생님… 당신은…?”
    “난 이제 별의 일부예요. 당신들이 만든 기억의 흐름이, 시간의 벽을 녹였어요. 이제 감정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우주의 언어가 되었죠.”
    “우주의… 언어요?”
    “그래요. 감정은 결국 진동이에요. 빛이 흔들리고, 소리가 울리고, 기억이 이어지는 모든 현상은 감정의 형태예요. 그리고 지금, 리안테르의 감정이 우주의 파동과 공명하기 시작했어요.”

    로안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이 도시가 우주와 연결된다는 건가요?"
    “이미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균형이 필요해요. 감정의 파동이 너무 강해지면, 시간의 틈이 열리게 돼요.”
    “시간의 틈… 그럼, 미래와 과거가 서로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당신의 신호는 미래로 향했지만, 이제 미래의 감정이 되돌아오고 있어요. 감정은 일방향이 아니에요. 기억처럼, 그것도 순환해요.”

    그 말이 끝나자, 언덕 아래 도시의 가로등이 동시에 깜빡였다. 하늘에 별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 빛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리안테르의 밤하늘 위에 거대한 문양이 생겨났다. 수많은 별들이 하나의 거대한 나선으로 이어지며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도시의 심장 박동을 하늘이 그대로 반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이는 두려움에 떨었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 하나가 속삭였다.
    “하늘이 우리 마음을 기억하고 있어요.”

    루디안이 언덕으로 올라왔다. 그는 하늘의 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경고야, 로안. 감정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어. 도시의 감정이 한계에 다다르면, 스스로 붕괴할 수 있어.”
    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균형을 지켜야겠네요. 엘라 선생님이 말했죠. 감정은 흐름이 아니라 호흡이라고.”
    “그 호흡을 멈추지 않게 하려면?”
    “감정을 다시 ‘이야기’로 돌려야 해요.”

    그날 밤, 로안은 복원소의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감정은 단어가 되었고, 단어는 언어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 언어가 다시 ‘이야기’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을 지킬 수 있어요. 이야기는 기억의 순환이자, 감정의 호흡이에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를 남기는 겁니다.”

    그의 제자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졌다. 시장의 상인, 거리의 음악가, 학교의 아이들, 심지어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까지.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짧은 일기, 노래, 낙서, 영상, 그리고 편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이야기의 바다로 변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하늘의 별들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별빛이 점점 강해지며 도시 위로 내려왔다. 별빛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슬픔은 별의 빛으로 변했고, 누군가의 사랑은 하늘에 반사되어 새로운 별을 만들었다. 그날 리안테르의 하늘에 새로 떠오른 별은 다섯 개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야기의 별들’이라 불렀다.

    로안은 언덕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빛나무의 가지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떨어져 그의 손바닥 위에 닿았다. 그 빛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로안, 당신은 해냈어요. 감정을 넘어서, 인간의 이야기를 다시 되살렸어요.”
    “엘라 선생님…”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감정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아요. 언제나 다시 시작되죠. 그러니 기억하세요. 감정은 언어의 씨앗이고, 이야기는 그 씨앗이 피워낸 꽃이에요.”

    그 목소리가 사라진 후, 로안은 언덕의 바람 속에 몸을 맡겼다. 도시의 불빛들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속삭였다.
    “이야기… 그게 결국 우리의 존재 방식이군요.”

    그날 이후, 리안테르의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매년 그날을 기념했다.
    ‘별의 기억제(記憶祭)’ — 감정이 남긴 이야기를 하늘로 올리는 날.

    그날 밤마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의 이야기가 또 다른 세상으로 닿기를.”

    그리고 아주 멀리, 그 목소리를 들은 또 다른 시대의 누군가가 속삭였다.
    “우리는 들었어요. 감정의 시대에서 온 노래를.”

    별빛이 깜빡이며 대답했다.
    감정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건너는 이야기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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