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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27부 : 소리를 잃은 별들빛의 언덕에서 2025. 10. 27. 12:12반응형
리안테르의 밤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별빛은 여전했으나, 그 빛에는 이전처럼 맥박이 없었다. 하늘의 편지들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사랑 고백, 위로, 후회, 다짐이 별 사이에 새겨지고 있었지만, 그 빛은 조용했다. 도시는 여전히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그 감정의 소리가 사라져 있었다.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하늘이 평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현상이 늘어났다. 아이들이 웃지 않았다. 거리의 노래꾼이 노래를 잃었고, 심지어 감정의 나무마저 바람이 불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빛은 여전했으나, 리안테르는 ‘침묵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루디안은 그 현상을 “공명의 소멸”이라 불렀다. 감정이 더 이상 서로 부딪히지 못하고, 고립된 채 머무는 상태였다. “감정이 소리를 잃으면, 존재는 방향을 잃는다…” 그는 노트에 그렇게 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린이 떠난 이후, 그는 매일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지켰지만, 그 나무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감정의 나무에서 희미한 빛의 틈이 열렸다. 그 틈 사이로 한 아이가 나타났다.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지만,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말 대신 공기 중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 움직임을 따라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어가 아닌 진동이었다.
루디안은 숨을 삼켰다. “너는… 누구냐?”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빛나무의 줄기를 가리켰다. 그리고 손끝으로 공기를 쓸어내듯 움직였다.
— 쉿…
그것은 분명히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루디안은 마음속에서 그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해요.’그 아이는 나무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 나무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지마다 희미한 빛이 피어나더니, 그 빛이 점점 퍼져나가 공기 중으로 흘렀다. 도시의 공기가 흔들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가 하나둘 깨어났다. 그것은 웃음, 울음, 그리고 이름이었다.
그날 밤, 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별은 빛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작은 울림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속삭였다.
“당신도 들려요? 하늘이… 노래하고 있어요.”리안테르의 사람들은 그날을 ‘귀환의 밤’이라 불렀다.
그들은 깨달았다.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정이 ‘형태’를 바꾼 것이었다. 말이나 음악이 아닌, 존재 자체의 울림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아이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다만 사람들은 그를 ‘무음의 아이’라 불렀다. 그는 거리마다 걸으며, 공기 속에 손끝으로 진동을 남겼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선 바람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가슴에서 작고 따뜻한 소리가 피어났다. 그것은 마치 감정이 다시 숨쉬기 시작한 듯한 순간이었다.
루디안은 아이를 지켜보며 말했다.
“너는 세린이 남긴 마지막 편지야. 언어를 넘어서 감정을 전하는 존재…”
아이는 미소 지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끝에서 작은 빛이 피어나 루디안의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그 빛은 루디안의 심장 속에서 박동처럼 울렸다.
— 감정은 말이 아니라, 존재의 맥박이에요.그 순간, 루디안은 이해했다. 감정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한 것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공명’하는 것이었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파동으로, 음악이 아니라 빛의 맥박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며칠 후, 루디안은 마지막으로 언덕을 찾았다. 그는 나무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세린, 로안, 엘라… 이제 이해했어. 우리가 지키려 했던 감정은 결국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지. 하지만 이 아이는 그걸 느낄 수 있어. 말없이, 빛으로, 존재로.”그의 말이 끝나자, 나무가 조용히 흔들렸다.
가지 끝에서 한 알의 빛이 떨어졌다. 그것은 바람에 실려 아이의 손에 닿았다. 아이는 그것을 하늘로 던졌다.
그 빛은 곧바로 수천 갈래로 흩어지며 별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별들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그날 이후, 리안테르의 하늘은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없었지만, 모두의 가슴은 같은 박동으로 울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웃을 때 하늘의 별이 반짝였고, 누군가 슬퍼할 때 하늘의 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것은 말이 아니었다. 음악도 아니었다.
그건 감정의 가장 순수한 형태, 존재의 진동이었다.루디안은 미소 지으며 마지막으로 남겼다.
“감정은 이제 소리를 잃었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노래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로 흩어졌다.
그날 밤, 하늘의 별들은 하나같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그건 감정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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