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10부 ― 0:9의 굴욕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10. 21:04반응형
아르디아전이 끝난 지 일주일, 노르드윈드의 훈련장은 다시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전술 회의에서도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0:2의 패배였지만, 그 경기에서 모두가 느낀 건 단순한 ‘실력 차이’ 이상의 것이었다.
레오네의 팀은 완벽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계산된 예술이었고, 노르드윈드는 그저 그 예술을 바라보는 관객에 불과했다.“우리도 뭔가 해야 해.”
주장 대행 로렌이 입을 열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리안만이 창문 바깥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변했어요.”
그 말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이젠 우리가 가볍게 달릴 수 없다는 뜻이에요. 더 무겁게, 더 단단하게 버텨야 해요.”
로렌은 한숨을 쉬었다. “바람 얘기 그만해라, 리안. 이제 현실을 봐야지.”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오늘은 바람이 아닌 ‘무게’를 배워야 해요.”그날 오후, 바르탄 코치는 새로운 훈련을 시작했다.
“오늘은 체력이다. 공 따윈 필요 없어.”
선수들은 산비탈을 오르며 모래주머니를 멨다.
비가 내렸고, 진흙이 다리에 달라붙었다.
리안은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옮겼다.
“이것도 바람이에요. 무거운 바람.”
그의 말에 모두가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뒤엔 발걸음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졌다.며칠 뒤, 새로운 경기 일정이 발표됐다.
상대는 리그 2위, 산테르노 FC.
한때 리그 챔피언이었던 강팀이었다.
릴라 매니저가 일정을 보고 놀랐다.
“지금 우리 상태로 산테르노라니, 이건 무리예요.”
바르탄 코치는 담담히 말했다.
“진짜 바람은 맞바람일 때 강해지는 법이지.”그리고 경기 당일, 하늘은 잔혹할 만큼 맑았다.
리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바람이 거의 없어요.”
“좋지 않냐? 방해 안 되잖아.”
카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람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 불어야 해요.”경기가 시작됐다.
산테르노의 선수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들의 패스는 일정했고, 슈팅은 날카로웠다.
전반 15분 만에 두 골을 내줬다.
그리고 그 후, 30분도 되지 않아 점수는 0대5.
관중석의 야유가 쏟아졌다.
“이게 바로 꼴찌 팀이지!”
“섬의 꼬마 바람은 이제 멈췄네!”후반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리안은 지쳐 있었고, 팀의 호흡은 끊어졌다.
바람 없는 경기장은 숨 막히게 고요했다.
리안이 공을 몰고 나갔지만, 상대 수비 둘에게 동시에 막혔다.
그의 몸이 잔디에 부딪히며 미끄러졌다.
귀에 관중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는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떨렸다.
그때, 카이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리안, 그만해. 오늘은 안 되는 날이야.”
하지만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바람이 없을 땐… 우리가 바람이 되어야 해요.”그는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공은 이미 빼앗겼고, 곧 여섯 번째 골이 들어갔다.
0대6, 그리고 0대7.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쯤 점수판엔 0대9가 찍혀 있었다.
선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르탄 코치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락커룸은 무거운 정적에 잠겼다.
누군가 신발을 벗어 던졌다.
“이게 뭐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다른 선수도 소리쳤다.
“리안, 네 바람은 이제 끝났어! 현실 좀 봐!”
그 순간, 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맞아요. 오늘 우리는 졌어요. 완전히 무너졌어요. 하지만…”
그는 손을 움켜쥐었다.
“이건 끝이 아니에요. 바람은 멈춰도, 공기는 사라지지 않아요.”
누군가 피식 웃었다. “또 시적인 말이야?”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시가 아니라, 약속이에요. 다음엔 우리가 바람을 만들 거예요.”모두가 침묵했다.
그는 벽에 걸린 유니폼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지 않아요. 언젠가, 다시 우리 쪽으로 올 거예요.”밤이 되자, 리안은 훈련장으로 나갔다.
빈 경기장에 홀로 서서 공을 찼다.
하늘은 별이 가득했고, 잔디 위의 공은 무겁게 구르다 멈췄다.
그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 바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내일은 불겠죠?”
그의 눈동자에 별빛이 반사됐다.
그 순간, 아주 약한 바람 한 줄기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쳤다.그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내일도 달릴게요.”리그 역사에 남을 0대9의 굴욕적인 패배.
하지만 그 패배는 노르드윈드에게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를 심어준 날이었다.
패배는 상처였지만, 그 상처가 바람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바람은 아직 조용했지만, 곧 다시 불 것이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