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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언덕에서》 제1부 : 잿빛 하늘 아래의 미소
    빛의 언덕에서 2025. 10. 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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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언제나 회색이었다. 하늘은 매일같이 잿빛으로 물들었고, 건물의 벽은 동일한 색의 돌로 덮여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표정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웃는 순간, 감정 감지기가 작동했고 그 신호는 즉시 감정검열국으로 전달되었다.

    레오 알라리스는 그 거리 한가운데를 웃으며 걷고 있었다. 누구도 감히 웃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남자. 하지만 그의 웃음은 진짜가 아니었다.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의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연습한, 훈련된 미소였다. 그는 검열국의 하급 기술자였고, ‘표정 데이터 수집’이라는 직업 덕분에 허용된 범위 내의 웃음을 짓는 것이 업무의 일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도시에서 가장 많이 웃는 사람이었지만 가장 웃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 아침, 레오는 감정감지기의 오작동을 점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거대한 광장 한복판, ‘침묵의 시계탑’ 아래에 서 있는 검열기계는 사람들의 미세한 감정 진동을 탐지했다. 사랑, 분노, 공포, 그 어느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숨을 멈추었다.

    “오늘은 몇 개의 웃음을 기록하셨습니까, 기술자 알라리스?”
    상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열여섯 개입니다, 국장님. 모두 규정 각도 이내의 근육 반응이었습니다.”

    “좋습니다. 불필요한 감정은 시스템을 부식시킵니다. 웃음은 통제되어야 합니다.”

    레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 안에는 미세한 반짝임이 있었다.
    그 반짝임은 오래전 기억의 잔상이었다.

    아직 검열이 시작되기 전, 그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들판을 걷던 기억이 있었다. 노을 속에서 어머니는 노래를 불렀고, 그는 그 곡을 따라 웃었다. “레오야, 웃음은 태양이야.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그 말은 이후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작은 불빛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태양은 가려졌다. 정부는 감정이 모든 전쟁의 근원이라며 감정억제법을 제정했고, “표정 없는 시민이 곧 완전한 질서”라는 구호 아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감정을 버렸다. 감정은 ‘병’으로 분류되었고, 웃음은 ‘불안정의 징후’로 기록되었다.

    레오는 그 법이 완전히 시행된 첫해에,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감정삭제소로 끌려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레오는 ‘웃음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감정의 잔재를 몰래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는 검열국의 장비창고에서 혼자 일을 마치고 있었다. 기계의 심장처럼 빛나는 관로 속으로 전류가 흐르고, 벽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파형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모두 동일한 파형이었다. 평탄하고, 죽은 듯한 선. 하지만 레오는 그 사이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 하나를 발견했다.

    — ‘미소 반응 코드: α-731’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진짜 웃음’이었다.

    “누구지…?”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창문 너머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회색 도시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노을이었다.

    그는 화면에 기록된 좌표를 추적했다. 그 신호는 도심의 외곽, ‘교육관 D-구역’에서 발생했다.
    ‘그곳은 감정교육 금지 구역 아닌가?’ 레오는 곧장 옷을 챙겨입고 몰래 나섰다.

    도시의 밤거리는 고요했다.
    가로등은 전자빛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켜졌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이동했고, 시간 외 활동은 범죄로 분류되었다. 레오는 어두운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D-구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랐다.
    벽면 가득 금지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그 사이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붓이 움직이는 소리, 물감이 스며드는 냄새. 그것은 이 도시에서 가장 금지된 행위 중 하나였다. 감정을 시각화하는 것.

    그림을 그리고 있던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다.
    짙은 갈색 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미약한 달빛 아래서 그녀는 붓을 들고 있었다. 레오는 무심코 말을 걸었다.

    “당신… 그거 알고 있습니까? 감정표현은 구류 사유입니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왜 웃고 있죠?”

    레오는 순간 말을 잃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당신이 웃고 있어서요.”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여성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용했지만, 세상의 모든 소음을 잠재웠다.

    “이름이 뭐죠?”
    “엘라 미렌.”
    “그럼 엘라, 당신이 그랬군요. ‘미소 반응 코드 α-731’의 주인공.”
    “당신은 누구죠?”
    “감정을 지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걸 복원하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는 순찰 드론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엘라는 붓을 내려놓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 도시에도 아직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었네요.”
    “그건 금지된 일입니다.”
    “그렇지만, 금지된 것만이 진짜일 때도 있잖아요.”

    그 말에 레오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잊혀진 감정이 깨어났다.

    순찰 드론의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창밖의 잿빛 하늘 아래서
    그들은 아주 작게 — 그러나 분명하게 —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레오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감정을 잃었지만, 아직 미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의 기록 장치에 이렇게 남겼다.

    “오늘, 나는 첫 번째 진짜 웃음을 보았다.
    그 미소는 법보다 강했고, 침묵보다 따뜻했다.
    어쩌면 이것이 혁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레오의 삶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잿빛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그 아래에서 처음으로 빛이 미소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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