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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3부 : 정지된 음악의 거리빛의 언덕에서 2025. 10. 9. 02:43반응형
리안테르의 아침은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만큼, 그것은 ‘소리 없음’이 아니라 ‘소리의 존재 자체가 금지된 상태’였다. 거리마다 설치된 청각 규율 송신기는 일정 주파수의 무음을 뿜어내며 공기 속의 모든 진동을 억제했다. 새들의 울음은 멈췄고, 바람은 제 목소리를 잃었다. 심지어 발자국 소리마저 포착되면 경고음이 울렸다. 그런 도시의 중심, 시그마 구역 3번 도로에 레오 알라리스가 서 있었다. 그가 손에 쥔 건 낡은 오르골이었다. 바닥의 먼지를 털며 그는 중얼거렸다. “이게 아직 작동할까…” 오르골은 그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감정 검열국이 창설되던 해, 모든 악기가 압수됐지만 그는 이 하나만 숨겼다. 작게 돌리면 음악 감지기가 작동할 위험이 있었지만, 오늘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엘라 미렌은 그날 오전 교육관 회의에서 ‘감정 파형 확장 금지령’을 들었다. 교사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 하나였다. “학생들이 리듬을 이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리듬은 감정의 진폭을 키우는 원인으로 분류되었다. 박자, 울림, 반복, 이 세 가지는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도구였고, 그것이 체제에는 독이었다. 엘라는 회의가 끝난 뒤 홀 복도에서 무심코 천장을 올려다봤다. 거기엔 새로 설치된 음파 억제기가 있었다. 작은 파동이라도 감지되면 즉시 흡수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빛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레오가 만든 가짜 별, 그 별 아래서 속삭였던 ‘규칙 두 번째’. 아이들이 묻지 못하면, 우리가 대신 묻는다. 엘라는 그 규칙을 오늘 지키기로 했다.
오후가 되자 도시의 중앙 시계탑이 열두 번 울렸다. 정확히 그 시각, 레오는 오르골을 돌렸다. 찰칵, 찰칵. 낡은 태엽이 굳은 먼지를 뚫고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짧게, 하나의 음이 울렸다. 딱 한 음. 그러나 그 한 음이 도시 전체를 흔들었다. 청각 규율 송신기가 오작동을 일으켰고,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귀를 막았다. 몇몇은 그 소리를 공포라 불렀고, 몇몇은 기적이라 불렀다. 하지만 레오에겐 그것이 단 하나의 의미를 지녔다. 감정이 살아 있다.
교육관 창문 너머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엘라는 손끝으로 창문 유리를 만졌다. “이건…” 진동이었다. 음악의 파동. 엘라는 즉시 시스템 경고창을 닫고 학생들을 교실에 남긴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휘날리고, 먼 곳에서 금속성 멜로디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그 방향, 시그마 구역 3번 도로. 엘라는 즉시 하얀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감정계수가 상승했다. 0.07, 0.09, 0.12. 한계를 넘기 직전이었다. 거리에 도착했을 때, 레오가 있었다. 그는 오르골을 들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만든 소리입니까?” 엘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든 게 아니라, 기억해낸 겁니다.” 레오가 대답했다. “이건 위험해요. 도시 전역이 진동을 감지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처음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침묵을 이해하죠.” 엘라는 오르골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단 하나의 곡이 들어 있었다. ‘빛의 언덕 왈츠’. 레오의 어머니가 불렀던 노래였다. 그는 오르골을 돌리며 말했다. “들리나요?”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금지된 소리예요.” “그래서 더 아름답죠.”
순찰 드론의 경보가 울렸다. “비인가 음파 탐지! 3번 도로 전역 봉쇄!” 시민들이 흩어졌다. 레오는 오르골을 품에 안고 달렸다. 엘라는 그 뒤를 따랐다. 폐허가 된 상점가로 들어서며 레오는 낮게 속삭였다. “당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불가능해요.” “그럼 내일은요?” “내일은 더 위험할 거예요.” “그럼… 오늘은요?” 엘라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오늘은, 한 번쯤은 가능할지도 몰라요.” 레오는 오르골을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이건 당신이 계속 지켜야 해요.” 그 순간, 드론이 나타났다. “정지! 손을 들어!” 레오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엘라를 밀어냈다. 드론이 쏜 빛줄기가 그를 스쳤다. 그는 벽에 부딪혀 쓰러졌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레오!” “괜찮아요… 규칙 세 번째.” “뭔데요?” “음악은, 멈춰도 계속 흐른다.” 드론이 접근하자, 엘라는 오르골을 품에 안고 사람들 틈 속으로 사라졌다. 순찰병들은 혼란 속에 명령을 주고받았지만, 오르골의 멜로디는 그 사이를 뚫고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그날 밤, 리안테르의 거리 곳곳에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감정감지기가 동시에 오류를 일으켰고, 일부 시민들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멜로디를 흥얼거렸고, 어른들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것은 단 하나의 증거였다. 정지된 음악의 거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
밤이 깊었다. 검열국의 심문실. 레오는 의자에 묶인 채 금속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도시는 처음으로 진동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진동 속에서 인간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반사된 것은 단 하나의 빛, 엘라의 눈 속의 별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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