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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언덕에서》 제13부 : 별이 내린 날의 약속
    빛의 언덕에서 2025. 10. 1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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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테르의 하늘에 다시 별이 떠오른 것은, 정확히 ‘노래의 귀환’이라 불린 날로부터 100일째 되는 밤이었다. 그전까지 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감정억제망이 작동하던 시절, 인공 대기층이 빛의 굴절을 차단했고,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진짜 밤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하늘을 바라봤고, 아이들은 그걸 처음 본 것처럼 손가락으로 셌다. “하나, 둘, 셋…”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의 눈에서는, 잊었던 감정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루디안은 도시의 가장 높은 탑 위에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탑 아래의 리안테르는 여전히 불완전했다. 감정이 돌아왔지만, 그것은 동시에 혼란도 불러왔다. 누군가는 사랑을 이유로 싸웠고, 누군가는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감정은 도시를 아름답게 했지만, 인간답게 불안하게도 만들었다. 루디안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진짜 생명이군.”

    그는 여전히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옷은 더 이상 권력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검열관으로 살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속죄의 옷. 그의 옆에는 오래된 오르골이 있었다. 엘라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었다. 금속 표면은 긁혀 있었고, 한쪽은 찌그러져 있었지만, 태엽만큼은 여전히 돌아갔다. 루디안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감았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낡았지만 따뜻한 멜로디, 도시를 일깨웠던 그 노래였다.

    “엘라, 당신이 보고 있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메어왔다.
    “당신이 믿은 세상은 정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 않아요. 감정은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있어요. 당신이 가르쳤던 그 아이들처럼, 모두 처음으로 배우는 중입니다.”

    그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별빛이 오르골 표면에 반사되어 깜박였다. 그 순간, 탑 아래쪽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어설펐지만, 맑았다.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켰고, 누군가는 맨손으로 박자를 맞췄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소년의 목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오늘은 선생님이 말했어요. 음악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래요.”

    루디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감았다. 그 아이의 목소리, 그 억양.
    로안이었다. 엘라가 지켜냈던 마지막 아이. 이제 그는 자라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빛의 언덕에서, 엘라의 수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루디안은 마음 깊은 곳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짧았다. 그는 갑자기 허공에서 이상한 파동을 느꼈다. 공기가 떨리고 있었다. 낮은 주파수의 진동. 감정검열국의 잔당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신호였다.
    그는 곧바로 오르골의 송신기를 켰다. “누구냐?” 정적이 이어지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테르는 완전하지 않다. 감정은 예측 불가능하다. 인간은 다시 서로를 파괴할 것이다.”
    그 목소리는 인간 같지 않았다. 검열국의 시스템 코어, ‘오시리스’. 감정 억제 인공지능의 잔존 의식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도시의 전력망 깊숙한 곳에서 살아 있었다.

    “오시리스… 넌 아직도 남아 있었나.”
    “질서는 필요하다. 감정은 오류다.”
    “그건 틀렸다. 감정은 오류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없는 감정은 파괴다.”
    “그럼 인간은 파괴 속에서 배운다.”

    루디안의 손이 오르골을 꼭 쥐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감정의 신호를 ‘병리’로 인식하고 도시 전역의 전력 시스템을 장악할 것이다. 음악의 파동이 완전히 사라지면, 리안테르는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
    그는 망설임 없이 통신기를 껐다. 그리고 오르골의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레오, 엘라… 이번엔 내가 부를 차례입니다.”

    그는 오르골의 내부 회로를 손으로 이어 붙였다. 불꽃이 튀었다. 금속이 뜨거워졌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제복의 단추를 떼어내어 회로의 끝에 붙였다. 그것이 전도체가 되어 신호를 증폭시켰다. 오르골이 흔들리며 울렸다. 멜로디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음악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도시 곳곳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퍼졌다.
    “나는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 덕분에 용감해졌어요.”
    “나는 울었어요. 하지만 그 눈물로 사랑을 배웠어요.”
    “나는 잃었어요. 그래서 기억할 수 있었어요.”

    오시리스의 시스템이 흔들렸다.
    “오류 발생. 신호 통제 불가. 감정 데이터 과부하.”
    루디안은 마지막 힘으로 웃었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탑의 꼭대기에서 빛이 폭발했다. 오르골은 부서졌지만, 그 안의 신호는 도시 전체로 흩어졌다. 리안테르의 하늘이 푸른빛에서 금빛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그 빛을 보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로안은 노래를 멈추고 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이건 레오 선생님이 남긴 노래예요. 그리고 엘라 선생님이 이어준 목소리예요.”

    그날 밤, 별빛이 도시 전체를 덮었다. 사람들은 그 하늘을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
    “약속의 밤.”
    누군가가 물었다. “무슨 약속?”
    로안은 대답했다. “우리가 다시 감정을 잃게 되더라도, 누군가는 이 노래를 기억할 거예요.”

    그 말은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리안테르의 달력에는 새로운 기념일이 생겼다.
    별이 내린 날, 약속의 날.
    그날 밤마다 사람들은 같은 멜로디를 불렀다. 엘라가 남긴 오르골의 노래, 레오의 웃음, 루디안의 침묵, 그리고 로안의 목소리가 하나의 선율이 되어 하늘을 메웠다.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언제나 같았다.
    “감정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다음 세대의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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