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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22부 : 잔향의 도시빛의 언덕에서 2025. 10. 22. 12:39반응형
감정의 바다가 일어난 뒤로, 리안테르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별빛으로 반짝였지만, 그 아래의 도시는 이전보다 훨씬 조용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울었지만, 그 감정에는 이전의 거침이 없었다. 마치 모두가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는 듯, 한 사람의 웃음이 멀리 떨어진 누군가의 눈물로 이어지는 묘한 연결이 생겼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정 공명’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잔향의 도시’라 불렀다.
리안테르의 거리 곳곳에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걸으면 그 자리에 미세한 빛의 흔적이 남았다. 그 빛은 잠시 머물다가 바람에 흩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잔상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감정의 잔향이었다. 인간이 느낀 감정의 파동이 공간에 머물러 남는 현상이었다. 아이들이 뛰며 웃으면 거리의 돌바닥이 따뜻하게 빛났고, 누군가 슬픔에 잠기면 벽이 푸르게 물들었다. 도시가 마치 살아 있는 감정의 생명체처럼 숨 쉬고 있었다.
루디안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감정의 바다에서 로안이 사라진 이후, 그는 그를 대신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엔 늘 공허함이 있었다. “그는 정말로 바다가 된 걸까, 아니면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을까…” 그는 혼잣말을 하며 빛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무의 중심은 여전히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은 바람을 따라 도시 곳곳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날 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도시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하늘의 별빛이 일제히 흔들렸다. 그리고 리안테르의 중심광장에 거대한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놀라 거리로 뛰쳐나왔다. 아이들이 손을 가리켰다. “저거… 노래하고 있어요.”
실제로 빛의 구체에서는 희미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그 소리는 점점 명확해졌고, 사람들은 곧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너희 안에 있다.”로안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음성 기록이 아니었다. 감정의 파동이 공명하여 만들어낸, 살아 있는 진동이었다. 도시 전역의 바람이 반응했고, 언덕의 나무가 흔들리며 그 노래에 화답했다.
루디안은 광장으로 달려갔다. “로안…!” 그는 손을 뻗었지만, 구체는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 로안이라는 것을. 그 목소리는 도시를 감싸며 말했다.
— “이제 리안테르는 감정의 균형을 배워야 해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기쁨에만 머물지도 마세요. 감정은 흐르는 강이에요. 멈추면 썩고, 억누르면 무너져요. 흘러야만 살아 있죠.”그 말이 끝나자, 빛의 구체가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져 하늘로 올라갔다. 그 조각들은 별빛과 섞여 새로운 무늬를 만들었다. 그것은 거대한 원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감정의 고리’라 불렀다. 하늘에 떠 있는 그 원은 매일 밤마다 색이 달라졌다. 어떤 날은 붉고, 어떤 날은 푸르며, 어떤 날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색을 보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다. “오늘 하늘은 푸르니까,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겠지.” “오늘은 붉으니까, 누군가 사랑을 고백했나 봐.” 리안테르는 더 이상 언어로만 소통하지 않았다. 하늘이 도시의 감정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루디안은 알았다. 감정의 고리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나무 아래에서 속삭였다. “로안, 감정이 균형을 찾았다고 해도, 언제나 누군가는 그 균형을 잃을 거야.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지.” 그러자 나무의 잎사귀가 흔들리며 부드러운 빛을 내뿜었다. 마치 누군가 대답하듯이.
— “그래서 우리가 계속 이야기해야 해요.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 한, 감정은 길을 잃지 않아요.”그 목소리는 분명 로안의 것이었다. 루디안은 웃었다. “좋아. 그럼 난 이야기꾼이 되겠어.”
그날 이후, 그는 매일 밤 빛의 언덕에 앉아 사람들에게 감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엘라의 미소, 나에라의 노래, 미르의 회한, 로안의 믿음, 그리고 자신이 지켜본 도시의 모든 장면을. 사람들은 언덕에 모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하늘의 감정 고리가 살짝 흔들렸다. 그건 마치 로안이 웃고 있는 듯한 미세한 떨림이었다.
세월이 흘러, 루디안의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었을 무렵, 리안테르의 아이들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 제목은 《잔향의 도시》. 그 가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린 감정의 바다에서 태어나
별빛의 언어로 서로를 불렀네.
울음이 노래가 되고,
침묵이 이야기로 피어났네.
그리고 그 모든 빛이 흩어져도,
우리는 서로의 잔향 속에 산다.”그 노래가 끝나던 순간, 하늘의 고리가 유난히 밝게 빛났다. 언덕의 나무가 흔들리며 마지막 잎 하나를 떨어뜨렸다. 루디안은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 잎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 “고마워요. 당신의 이야기가 우리를 살게 했어요.”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로안, 엘라, 나에라… 그대들의 노래는 이제 리안테르 그 자체야.”그날 밤, 도시 전체가 별빛으로 덮였다. 감정의 잔향이 바람을 타고 흘렀고, 사람들은 서로의 미소를 통해 다시 마음을 전했다. 리안테르는 더 이상 감정을 배우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감정이 되어 있었다.“감정은 존재의 마지막 언어다.”
그 말이 새겨진 빛의 언덕은, 여전히 밤마다 조용히 노래하고 있었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