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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1부 ― 섬의 소년, 바람을 따라
    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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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아르도 섬은 바람의 섬이라 불렸다. 사계절 내내 바람이 멈추는 날이 없었다. 그 바람은 파도를 일으키고, 대지의 풀잎을 흔들고, 섬사람들의 언어처럼 노래했다. 리안 브라이트윈드는 그 바람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여섯 살 무렵부터 그는 나무로 만든 낡은 공을 차며 바람이 가는 방향을 읽는 법을 배웠다. 다른 아이들은 방향을 맞추기 위해 눈을 찌푸렸지만, 리안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오히려 바람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있었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바람에 휘날리는 빨랫줄을 붙잡으며 외쳤다.
    “리안, 또 공을 차러 나가니? 밥은 먹고 가야지!”
    “금방 돌아올게요, 엄마! 오늘은 서쪽 바람이에요, 슛이 더 멀리 갈 거예요!”
    그의 웃음소리는 파도보다 가볍게 날아올랐다.

    리안에게 축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공이 발끝을 떠날 때마다 그는 묻곤 했다. “이번엔 어디까지 날아가겠니?” 공은 언제나 그의 말에 대답하듯 곡선을 그리며 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리안의 가슴속에도 같은 곡선이 그려졌다. 그것은 언젠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궤적이었다.

    하지만 섬의 현실은 좁았다.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고, 마을의 운동장은 돌투성이였다. 사람들은 리안이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바람으로 밥 벌어먹을 수 있나?” “축구 같은 건 도시의 부잣집 애들이나 하는 거지.” 그런 말들이 리안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웃었다. “그래도 바람은 우리 섬에도 불잖아요.”

    그의 꿈은 단 하나였다. 세계 최고의 리그가 열리는 대륙으로 가는 것. 그는 밤마다 항구의 등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언젠가 나도 저 빛을 따라갈 거야. 바람은 멈추지 않으니까.”

    그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는 낡은 축구공과 어부 아저씨의 손자 ‘테오’였다. 테오는 늘 리안의 뒤를 쫓아다니며 구멍 난 공을 함께 찼다.
    “리안, 너 정말 대륙으로 갈 거야?”
    “응. 바람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이 섬에만 머물면 바람의 끝을 볼 수 없다고.”
    테오는 잠시 침묵하다가 주머니에서 조개껍질 하나를 꺼냈다.
    “그럼 이거 가져가. 바람이 네가 길을 잃지 않게 해줄 거야.”
    리안은 그 조개를 목에 걸고 웃었다.
    “고마워, 테오. 내가 꼭 돌아와서 바람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러던 어느 날, 섬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바다를 건너온 한 노인. 그는 오래된 지도와 검은 가죽공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대륙 리그의 스카우트”라 불렀다. 그는 리안의 경기를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 공이 아니라 바람을 차는군.”
    “바람이요?” 리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대부분은 공을 보지만, 넌 공 주위의 공기를 보고 있지. 그건 아무도 가르칠 수 없는 감각이야.”

    그날 밤, 리안은 처음으로 ‘세계’라는 단어를 꿈꿨다. 그가 서 있던 작은 해변이, 갑자기 끝없이 넓은 운동장으로 변했다. 관중의 함성이 바람처럼 밀려왔고,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공을 찼다. 공이 떠오를 때, 그 뒤로 거대한 도시의 불빛이 번졌다. 그리고 그 순간, 꿈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리안의 집 앞에 편지가 도착했다.
    ‘벨타노 유소년 리그 입단 테스트 초청장’이었다.
    어머니는 편지를 읽으며 손을 떨었다.
    “리안, 정말 갈 거니? 그곳은 너무 멀단다.”
    리안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바람이 말했어요. 멀리 갈수록 더 크게 불 거라고.”

    그날 새벽, 그는 항구로 향했다. 어머니는 작은 보따리를 안겨주며 속삭였다.
    “리안, 기억해라. 축구는 싸움이 아니라 마음이야. 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바람도 네 편이 되어줄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에 올랐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햇살이 공처럼 반짝였다. 리안은 마지막으로 섬을 향해 공을 찼다.
    공은 바람을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그는 속삭였다.
    “하늘을 향해 찬다. 그게 내 첫 슛이야.”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바람이 그를 따라 불었다.
    그 바람은 섬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엘리아르도의 바람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렸다.
    ‘리안의 바람.’
    그것은 언젠가 세계의 경기장에서 다시 불어올 운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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