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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4부 ― 노르드윈드 FC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4. 05:14반응형
기차는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점점 변해갔다. 벨타노의 화려한 도시가 사라지고, 대신 안개 낀 들판과 오래된 공장 굴뚝들이 나타났다. 리안은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손바닥으로 김을 닦았다. “저기가… 노르드윈드구나.” 누렇게 빛바랜 표지판이 기차역 앞에 서 있었다. “NORDEWIND STATION.” 글자는 반쯤 벗겨져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보다 바람의 흔적이 더 많았다.
역을 나서자 한적한 골목 사이로 낡은 간판이 보였다. ‘노르드윈드 FC 클럽하우스’. 문은 삐걱거렸고, 유리창에는 공이 부딪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리안은 숨을 고르며 문을 밀었다. 안에는 축구공 냄새 대신 먼지와 오래된 나무의 냄새가 가득했다. 벽에는 팀의 흑백 사진 몇 장이 걸려 있었다. “창단 30주년 기념”, “한때 리그 2위.” 그러나 사진 속 선수들의 눈빛은 모두 과거에 멈춰 있었다.
“누굴 찾는 거지?”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벽 너머에서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잔뜩 구겨진 유니폼 위에 낡은 코트를 걸친 채였다.
“저는 리안 브라이트윈드입니다. 벨타노 테스트에서 여기로 추천받았습니다.”
남자는 한동안 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말도 안 되게 뛰는 꼬마로군. 바르탄 코치라고 하지. 자, 어서 들어와. 팀을 보여줄게.”리안이 그를 따라가자 훈련장이 보였다. 진흙이 군데군데 파여 있었고, 골대는 한쪽이 기울어 있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한쪽에서 느슨하게 공을 돌리고 있었다. 웃음소리도, 구호도 없었다. 바람만이 휘파람처럼 훈련장을 가로질렀다.
“여기가… 팀인가요?” 리안이 물었다.
“그래, 여기가 노르드윈드야. 바람이 세지만 사람들은 지쳐 있지. 몇 년째 꼴찌를 달리고 있으니까.”그때 한 선수가 리안을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새로 온 꼬맹이? 또 실패한 유망주야?”
다른 선수가 웃으며 말했다.
“벨타노에서 떨어졌대. 뭐, 우리 팀에는 딱 어울리지.”
리안은 웃으며 인사했다. “잘 부탁해요! 같이 열심히 해요!”
그러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섰다.훈련이 시작되자 리안은 곧 차이를 느꼈다. 선수들은 움직임이 느렸고, 패스는 힘없이 흘렀다. 리안이 공을 받자마자 드리블을 시도했지만, 곧바로 거친 태클이 들어왔다.
“너 혼자 하는 거 아니야, 꼬마야.”
리안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혼자 아니에요. 여러분도 있잖아요.”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훈련이 끝나고, 리안은 홀로 공을 찼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붉은 하늘 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는 공을 멈추지 않았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그는 몸의 각도를 조정했다. “여긴 바람이 다르네. 하지만… 괜찮아. 바람은 언제나 나랑 이야기하니까.”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바르탄 코치는 담배를 끄며 중얼거렸다.
“저 아이, 웃고 있네. 이런 팀에 와서도.”
옆에 있던 매니저 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아이죠. 모두가 포기한 구장에서 혼자 웃어요.”
바르탄은 짧게 대답했다.
“그 웃음이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바람이 세면 불씨는 쉽게 꺼지지.”다음 날 아침, 리안은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왔다. 그는 구부러진 골대의 그물을 고치고, 진흙 구덩이를 메웠다. 누군가 그를 보고 비웃었다.
“너 뭐 하냐?”
“경기하려면 먼저 운동장이 살아 있어야죠.”
그 말에 선수들은 잠시 멈춰 섰다. 리안은 다시 웃으며 공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바람이 좋아요. 패스 연습하기에 딱이네요.”그날 훈련은 달랐다. 리안이 먼저 소리쳤다.
“왼쪽으로! 지금 바람이 밀어요!”
그의 외침에 따라 공이 예상보다 멀리 나갔다. 동료가 얼떨결에 그 공을 받자, 공은 깔끔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순간, 훈련장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봤죠? 바람도 우리 팀원이잖아요.”잠시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또 다른 웃음이 이어졌다.
릴라 매니저는 클럽하우스 창문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저 아이, 정말 이상한 바람을 불러오는 걸요.”
바르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람은 방향을 바꿀 줄 아는 놈에게만 미소 짓지.”그날 저녁, 리안은 혼자 훈련장을 걸었다. 하늘은 어둑했고, 골대는 여전히 삐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그라운드는 살아 있었다. 그는 공을 한 번 차 올리며 속삭였다.
“노르드윈드… 이제 네 이름처럼 불어보자.”바람이 대답하듯 골대 그물을 흔들었다.
리안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팀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팀의 심장을 깨우고 있었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