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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11부 ― 무너진 날의 약속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11. 22:32반응형
0대9.
그날의 숫자는 리그 기록에 남았고, 팀의 마음에도 깊게 새겨졌다.
노르드윈드의 기사 제목은 전부 같았다.
‘리그 최악의 참패’, ‘섬의 바람은 멈췄다’, ‘노르드윈드, 방향을 잃다.’
기사 속의 활자는 잔인하게 선명했다.다음 날 훈련장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잔디 위엔 바람도 불지 않았다.
리안은 혼자 공을 들고 서 있었다.
어제보다 더 무겁고, 어제보다 더 조용한 공이었다.
그는 그 공을 몇 번 차봤지만, 공은 단 한 번도 예전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그의 발끝은 멈춰 있었고, 그의 눈빛은 꺼져 있었다.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아직 바람은 남아 있다.”
리안이 돌아보니,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은 카이가 서 있었다.
그는 웃으며 리안을 바라봤다.
“형… 이제 걷는 거 괜찮아요?”
“아직 뛰긴 힘들어. 하지만 네가 멈췄단 얘기를 듣고 그냥 있을 순 없더라.”리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형, 난 어제… 아무것도 못했어요. 공도, 팀도, 바람도 다 잃었어요.”
카이는 천천히 그 옆으로 다가왔다.
“그럼 이제부터 다시 찾으면 되잖아.”
“근데… 모두가 떠날지도 몰라요. 다들 말했어요. 더는 의미 없다고.”
카이는 웃었다.
“리안, 축구는 공 하나로 시작하는 거야. 팀이 없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한 명이라도 다시 찬다면, 그게 시작이야.”그는 리안의 손에 자기의 목걸이를 쥐여줬다.
은색 휘장이 달린, 오래된 체인 목걸이였다.
“이건 내 첫 승리 때 코치가 준 거야. ‘넘어져도 걷는 게 진짜 리더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더라.
리안, 넌 이미 리더야. 그러니까 이번엔 너 혼자라도 바람을 다시 일으켜.”그 말에 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엔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목걸이를 쥔 손을 꽉 움켜쥐었다.
“형, 약속할게요. 절대 멈추지 않을게요.”며칠 후, 훈련장이 다시 열렸다.
리안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그 뒤를 따라 토미, 로렌, 루카, 그리고 릴라 매니저가 나타났다.
모두 말이 없었다.
리안이 공을 들고 말했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가 진짜 잃은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어요.”
로렌이 비웃듯 말했다.
“마음이 골을 넣어주진 않아.”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마음이 없으면, 골을 넣을 이유도 없어요.”그 한마디에 모두가 잠시 말이 없었다.
릴라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다시 연습합시다.
지금은 0대9지만, 언젠가 1대0이 될 거예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훈련은 거칠고 조용했다.
리안은 매일같이 공을 찼다.
하루는 비가 왔고, 하루는 진흙탕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카이는 가끔 목발을 짚고 와서 그들을 지켜봤다.
그의 눈빛은 말없이 ‘좋아’라고 말하고 있었다.어느 날 밤, 리안은 혼자 훈련장을 지키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패스 루트, 전환 포인트, 바람의 변화 각도…”
그는 전술 노트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손은 젖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릴라가 다가와 물었다.
“그림이에요?”
“아니요. 우리가 다시 날기 위한 지도예요.”며칠 후, 리안은 팀원들에게 그 노트를 보여줬다.
“우리 이제 바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만들어야 해요.
바람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뛰면서 일으키는 거예요.”
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우리가 바람이 되자.”그날부터 노르드윈드의 훈련은 달라졌다.
선수들은 서로의 움직임을 기억했고, 공이 흐를 때마다 “지금 바람!”이라 외쳤다.
공은 점점 살아났다.
패스는 단단해졌고, 웃음이 돌아왔다.훈련이 끝난 후, 리안은 하늘을 바라봤다.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그는 목걸이를 쥔 손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형, 봤죠? 이제 다시 불어요.”그 순간, 바람이 일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람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깃발을 흔들었다.
그건 마치 팀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노르드윈드는 그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점수는 여전히 0이었지만, 마음속 바람은 완전히 되살아났다.
패배의 잔해 위에서, 그들은 첫 번째 승리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얻고 있었다.그것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약속,
그리고 다시 불기 시작한 바람의 맹세였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