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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14부 ― 바람의 그림자
    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1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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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치오라전이 끝난 다음 날, 도시엔 여전히 그들의 이름이 돌았다.
    “기적 같은 동점골!” “노르드윈드, 비 속의 반란!”
    신문의 사진 속 리안은 비를 맞으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짧았다.
    훈련이 다시 시작되자, 바르탄 코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리안.”
    그가 말했다.
    “너, 경기 막판에 독단으로 뛰었지?”
    리안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네. 하지만 그건—”
    “전술상 네 자리가 아니었다.”
    바르탄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방법까지 옳은 건 아니야.
    축구는 한 사람의 바람이 아니라, 열한 명의 방향으로 부는 거다.”

    락커룸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토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코치님, 그래도 리안 덕분에 비겼잖아요.”
    “그래. 하지만 리안의 플레이가 실패했으면?
    우린 또 0대1로 졌을 거다.”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리안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팀을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리안은 혼자 구석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는 공을 몇 번 찼지만, 발끝이 무거웠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너답지 않네.”
    카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목발 없이, 아직 약간은 절뚝거리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형! 이젠 괜찮아요?”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걷는 건 된다.
    근데 넌 왜 멈춰 있냐?”
    리안은 공을 멈추며 말했다.
    “코치님 말이 맞아요.
    전… 팀을 위험하게 만들었어요.”
    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리안, 네가 한 건 위험한 게 아니라 ‘선택’이야.
    축구는 위험 속에서 선택하는 경기야.
    다만 그 선택이 팀의 바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숨도 들어가야 해.”

    그 말이 리안의 가슴을 쳤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 바람이 아니라, 모두의 바람으로…”
    “그래, 그걸 잊지 마.”

    며칠 뒤, 노르드윈드는 다음 경기 준비에 돌입했다.
    상대는 몬테레나 FC, 공격적인 전술로 유명한 팀이었다.
    바르탄은 회의에서 말했다.
    “이번엔 수비다. 바람은 잠시 접어둔다.”
    리안은 잠시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해했다.
    지금은 바람이 아니라 ‘기초’를 다질 때라는 걸.

    경기 당일, 하늘은 잔잔했다.
    훈련 중에도, 경기장 입장할 때도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리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조용한 바람이에요. 쉬는 바람.”

    전반 30분까지 두 팀은 팽팽했다.
    몬테레나는 여러 번 슈팅을 시도했지만, 노르드윈드의 수비가 막아냈다.
    리안은 공격보다는 중앙에서 패스를 이어주며 팀의 균형을 지켰다.
    그는 마치 바람이 아니라 공기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 20분, 문제가 터졌다.

    수비수 로렌이 부상을 입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교체 아웃.
    수비 라인은 흔들렸고, 몬테레나가 기회를 잡았다.
    공이 중앙으로 빠르게 연결됐다.
    그 순간, 리안이 몸을 던졌다.
    슬라이딩 태클.
    깨끗한 수비였다.
    하지만 상대가 넘어진 척하며 크게 소리쳤다.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파울! 페널티킥!”
    관중석이 술렁였다.
    리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판을 바라봤다.
    “공을 먼저 쳤어요!”
    하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페널티킥.
    리안의 마음이 얼어붙었다.
    상대 선수의 슈팅.
    공이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0대1.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바르탄 코치는 아무 말 없이 벤치를 떠났다.
    리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을 감췄다.

    락커룸에서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모두 지쳐 있었고, 리안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탓했다.
    그때 카이가 들어왔다.
    그는 아직 유니폼을 입지 않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선수였다.
    “봤다.”
    “형… 나, 실수했어요.”
    “아니. 심판이 실수한 거야.”
    “아니에요. 내가 더 빨랐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카이는 잠시 리안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리안, 축구는 항상 옳은 바람만 부는 게 아니야.
    때로는 역풍도 불지.
    하지만 그 역풍이 너를 더 멀리 날려.”

    리안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엔 아직 슬픔이 있었지만, 그 안엔 불빛도 있었다.
    “그럼,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겠네요.”
    카이는 미소 지었다.
    “그래. 그게 바로 노르드윈드의 방식이지.”

    그날 밤, 훈련장엔 아무도 없었다.
    리안은 홀로 서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바람의 방향을 느꼈다.
    오늘의 바람은 차갑고 무거웠다.
    하지만 그 속엔 작게, 아주 작게 다시 불어오는 온기가 있었다.

    그는 그 온기를 붙잡듯 공을 찼다.
    공이 빗속을 가르며 포물선을 그렸다.
    그리고 골대에 닿는 순간,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리안은 속삭였다.

    “그래, 폭풍 뒤엔 언제나 바람이 남아.”

    그 바람은 아직 작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바로, 리안과 노르드윈드가 다시 일어설 희망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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