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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8부 : 아이의 꿈빛의 언덕에서 2025. 10. 9. 14:21반응형
밤이 지나도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빛은 더 이상 감시의 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아이들은 금지된 놀잇말을 속삭였다. 리안테르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 것이다. 감정감지기의 숫자는 여전히 회색으로 깜빡였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건 ‘오류’가 아니라 ‘변화’였다.
그날 새벽, 로안은 잠에서 깼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빛이 번져 있었다. 마치 하늘이 조금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몰래 침대 밑에서 작은 공책을 꺼냈다. 엘라 선생님이 만들어준 ‘기록 노트’였다. 표지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지만, 그 안에는 그의 모든 꿈이 적혀 있었다. “나는 날고 싶다. 하늘을 봤는데, 눈이 아프지 않았다. 어떤 남자가 웃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줬다.” 로안은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 한 줄을 썼다. “오늘은 꿈에서 진짜 하늘을 봤어요.”
학교에 가는 길은 여전히 조용했다. 거리의 확성기에서는 ‘감정 안정 지침’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기계음처럼 흔들렸다. 아이들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척 걸었다. 교실 문을 열자, 엘라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수업을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이건 도시의 지도예요. 그리고 여기가 우리 학교죠. 그런데…” 그녀는 지도에 없는 구역을 가리켰다. “여기에 ‘빛의 언덕’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은 아직 감정감지기가 닿지 못한 곳이에요. 우리가 언젠가 거기에 가게 될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로안은 손을 들었다. “선생님, 거기엔 뭐가 있어요?” 엘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꿈이 있어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웃음, 노래, 사랑 같은 것들요.” 아이들의 눈빛이 커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감정계수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오류로 처리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감정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로안은 학교 옥상으로 몰래 올라갔다.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 속에는 음악이 섞여 있었다. 그는 어딘가에서 그 멜로디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르골의 선율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속삭였다. “이건 레오 아저씨의 노래야.” 바람이 대답하듯 지나갔다. 그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하늘, 빛, 언덕, 그리고 웃고 있는 두 사람. 엘라와 레오였다.
로안은 그날 밤 꿈을 꿨다. 그는 넓은 들판 위에 서 있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하늘이 눈부시게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감정감지기도, 검열국도 없었다. 단지 사람들의 웃음과 노래만 있었다. 레오가 다가와 말했다. “이건 게임이야. 우리가 이겼어.” 로안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진짜 전차는요?” 레오는 하늘을 가리켰다. “바로 저기 있지.” 하늘 위로 한 줄기 빛이 떨어졌다. 그것은 금속이 아닌, 순수한 빛으로 만들어진 전차였다. 로안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빛이 손끝에 닿는 순간, 그는 깨어났다.
아침이 되자,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로안이 노래를 불렀대.” “진짜로?” “응, 감정계수가 울리지도 않았대.” 엘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로안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평소보다 맑았고,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어젯밤 꿈을 기록했어요.” 그녀는 조심스레 노트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모든 사람은 하늘을 가질 권리가 있다.’ 엘라는 그 문장을 읽으며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하면서 동시에 피어났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날 밤, 엘라는 오르골을 돌렸다. 음악은 바람을 타고 흘러나와 도시의 건물 벽에 부딪혔다. 그 순간, 도시 전역의 일부 감정감지기가 멈췄다. 시스템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간단했다. 한 아이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리안테르의 첫 번째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꿈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다음날부터 하나둘씩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 속에서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감정이 다시 언어가 되고, 언어가 빛이 되는 세상. 그것은 아직 현실이 아니었지만, 이미 누군가의 마음에서는 현실보다 더 강하게 살아 있었다.
엘라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빛줄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빛을 향해 속삭였다. “로안의 꿈이 진짜가 될 때, 리안테르는 다시 깨어날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은 마치 예언처럼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조용히 새로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희망’. 그것은 아직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단어였지만, 누구도 그걸 금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이미 아이들의 꿈 속에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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