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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을 향해 찬다 – 브라이트 윈드의 전설》 제19부 ― 바람 없는 경기
    하늘을 향해 찬다 2025. 11. 1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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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지 한 달, 노르드윈드는 다시 중위권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녹슨 기차처럼 무겁게 움직이는 공, 서로 맞물리지 않는 움직임, 그리고 텅 빈 듯한 중앙.
    경기장은 어느새 바람이 멈춘 듯 정적만이 가득했다.

    팬들은 웅성거렸다.
    “리안이 빠진 뒤로 계속 무승부야.”
    “아무도 방향을 안 잃었을까?
    봐, 예전 같지 않잖아.”
    그 말들은 선수들의 마음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특히 토미는 무겁게 체중을 옮기며 말했다.
    “오늘도 0대0이면 어떡하지… 우린 대체 왜 이렇게 됐지?”
    카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우린 달리고 있어. 근데, 달리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는 거지.”
    “그럼, 리안이 없어도… 우리가 바람을 보여줄 방법이 있을까?”
    카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있지. 하지만 우린 아직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있던 로렌이 고개를 들었다.
    “들으려고? 무슨 소리야?”
    카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바람은 불뿐 아니라, 들리는 거거든.
    지금 우린 누구도 서로의 숨결을 들으려 하지 않아.”

    그날 밤, 리안은 병원 침대에 앉아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허공에 공을 향해 손을 뻗은 그의 표정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저도… 이제 들을 수 있어요.
    내가 달리지 않아도, 바람은 이루어지고 있어요.”

    다음 경기 상대는 리그 최상위권인 엑셀티아 유스.
    구단 관계자들은 “지금 멘탈로는 이길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카이와 로렌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토미, 릴라, 팀원 전원은 서서히 모여들었다.

    “이 경기는 우리가 다시 바람을 일으킬 기회야.”
    카이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제 리안이 중심이 될 수는 없어.
    이제 우리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야 해.”
    토미가 손을 들었다.
    “그럼, 누가?”
    카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리안은 방향이었어.
    우린 추진력이야.”

    그 말에 락커룸 공기가 바뀌었다.
    릴라가 칠판 앞에 섰다.
    “좋아, 그럼 이번 경기 플랜은 ‘순환’이야.
    포지션 고정이 아니라, 모두가 한 번씩 서로의 자리를 느끼고 경험해볼 거야.”
    선수들이 놀랐다.
    “우리가 서로의 길이 돼주는 거지.”
    로렌이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그것이 곧, ‘바람 없는 경기’를 견디는 방법이야.”

    경기 당일, 하늘엔 한 점 구름 없이 맑았다.
    바람도 잔잔했다.
    관중석의 팽팽한 침묵이 경기장의 분위기를 잡아끌었다.
    리안은 병원 TV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오늘은 바람이 없겠네요… 그럼 어떻게 할래요, 여러분?”

    휘슬이 울렸다.
    엑셀티아는 변함없이 강했다.
    빠른 패스, 날카로운 결정력, 그리고 자신 있는 표정.
    전반 15분, 노르드윈드의 공이 끊기고 엑셀티아 측면 공격수의 돌파.
    순식간에 골문으로 슛이 향했다.

    그 순간—
    토미가 몸을 날렸다.
    손끝으로 공을 쳐냈다.
    실점은 막았다.
    그는 잔디에 몸을 구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아직 살아 있어.”

    전반전은 0대0으로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20분, 노르드윈드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토미가 골문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왼쪽! 지금은 바람이 아닌, 사람이다!”

    그 외침이 이어졌다.
    팀원들은 서로 친구에게 리듬을 맡기듯 공을 건넸다.
    “받아! 열어!”
    “나만 믿어!”
    “돌아!”

    그리고 후반 종료 1분 전, 로렌이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전진 패스를 받아 수비수를 제치며 슛 자세를 취했다.
    엑셀티아의 수비가 다가왔다.
    그때—
    그는 마지막 순간 공을 넘겼다.
    옆에 있던 마테오가 받아 그대로 강력한 슛!
    공은 골문 안으로 꽂혔다.

    골!

    관중석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릴라 매니저는 눈물을 닦으며 속삭였다.
    “들어갔다… 혼자 말고, 우리 모두가 넣은 골이야…”

    경기가 끝났을 때 점수판엔 1대0이 적혀 있었다.
    승리.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팀의 태도였다.
    그들은 바람 없이 이긴 것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바람에 의존하지 않는 승리,
    스스로 일어나는 팀의 첫 증거였다.

    병원 TV 앞에서 리안은 천천히 웃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래요. 이제 진짜로, 여러분이 불고 있어요.”

    그날 노르드윈드는 ‘리안 의존형 팀’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노르드윈드 – 바람 없는 날에도 날아오르는 팀.”

    리안의 바람은 잠시 쉬고 있었지만,
    그 대신 선수들의 발끝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바람 대신 이어진 심장 소리였고,
    그 심장 소리는 점점 더 강하게,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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