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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언덕에서》 제2부 : 엘라의 눈 속의 별빛빛의 언덕에서 2025. 10. 9. 00:40반응형
아침 종이 울릴 때, 도시는 이미 표정을 정리해두었다. 창문들은 같은 각도로 열렸고, 바람은 미리 정해진 속도로 골목을 통과했다. 엘라 미렌은 교육관 D-구역의 출입문을 지나며 손등에 부착된 감정계수를 한 번 확인했다. 숫자는 정적처럼 0.03을 가리켰다. 허용치 이내. 그녀의 일상은 늘 이런 방식으로 시작됐다. 감추고, 다듬고, 모른 척하는 것으로.
교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그들의 눈은 닫힌 창처럼 고요했고, 목소리는 동일한 높이로 인사를 냈다. 엘라는 걸음을 멈춰 교탁에 서며 오늘의 주제를 화면에 올렸다. 기계가 만든 문장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 감정의 기원은 혼란이다.
— 질서의 기원은 무감정이다.
— 배움의 기원은 복종이다.그녀는 이 문장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읽고 가르쳤다. 작은 틈도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어젯밤, 잿빛 골목에서 만난 그 남자의 미소가 문장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름은 레오 알라리스. 감정을 지우는 일을 하면서 감정을 기록하는 남자. 스스로 모순이 되어 버티는 사람.
“선생님.”
교실 뒤편에서 작은 손이 들렸다. 가장 말수가 적은 아이, 로안이었다.
“왜 우리는 노래를 배우지 않나요?”질문은 곧바로 정적을 불러왔다. 감정감지기가 천장에 달려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엘라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노래는 생각을 흐리게 합니다. 흐릿함은 판단을 약화시키죠. 우리는 분명해야 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끄러웠지만, 귀 속 어딘가에서 다른 목소리가 희미하게 겹치며 울렸다. 어릴 적, 엘라의 어머니는 밤마다 작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작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선율. ‘이건 바람에게만 들려주는 노래란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엘라는 그 기억을 오래전에 봉인했다고 믿었지만, 어젯밤 이후 봉인은 조금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관리기록을 작성하던 엘라에게, 감시 드론이 창틀을 스치며 지나갔다. 금속 날개의 진동이 칠판 위가루를 흩었다. 그녀는 로안을 불렀다.
“방금 질문, 누가 가르쳐줬니?”
“아무도요.” 아이의 목소리는 투명했다.
“그럼 왜 물었니?”
“어제 밤, 누군가 웃는 소리를 들었어요. 웃음이 노래 같아서요.”그녀는 펜을 놓았다. 어젯밤, D-구역의 빈 강의실에서 레오와 나눴던 대화가 뼛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금지된 것만이 진짜일 때가 있죠.’ 그가 말했을 때, 엘라는 오래 미루어둔 질문들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정오. 교육관 중앙홀에 모든 교사들이 모였다. ‘표정 규격 갱신’에 관한 짧은 지시가 내려졌다. 웃음의 각도와 지속 시간, 눈 주변 근육의 허용 진폭. 감정검열국은 웃음을 공업제품처럼 획일화하려 들었다. 발표를 마친 관리관이 홀을 내려오며 엘라 곁에서 속삭였다.
“D-구역에서 미세 감정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새벽 한 시경. 혹시 이상한 걸 보셨습니까, 미렌 교육관?”
엘라는 눈꺼풀을 반쯤 내렸다.
“아니요. 규정에 어긋나는 건 없었습니다.”관리관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누군가의 숨을 읽어내려는 듯한 시선. 그리고 지나쳤다. 사람들은 동일한 속도로 흩어졌다. 엘라는 가슴 안에서 뭔가가 천천히 내려앉는 걸 느꼈다. 거짓말의 무게였다. 그러나 그 무게는 이상하게도 그녀를 땅에 붙잡아주었다. 날아오르지 않기 위해 붙드는 힘. 그 힘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는 아직 몰랐다.
퇴근 무렵, 도시 전역의 하늘이 동시에 희끗해지더니 불시에 정전이 일어났다. 전광판들이 순식간에 침묵했고, 가로등이 꺼졌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매뉴얼에 따라 벽쪽으로 몸을 붙였다. 전력부족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때, 골목 위쪽 건물 옥상에서 아주 희미한 빛의 점이 반짝였다.
엘라는 무의식적으로 그 빛을 따라 걸었다. 규정을 어기는 발걸음. 밤의 골목은 생각보다 덜 차가웠다. 정전 덕분에 감시 카메라의 붉은 눈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가 계단참을 올라 마지막 난간을 넘자, 바람에 머리카락이 풀렸다. 옥상. 레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력망이 떨어지는 시간대를 계산해 봤어요.”
그는 마치 퇴근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가볍게 말했다.
“이렇게 어둡지 않으면, 별은 안 보이거든요.”엘라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과 잿빛에 갇혀 있다고 믿었던 천장이, 오늘만큼은 조금 얇아진 듯했다. 공장 굴뚝 사이로 몇 개의 점이 떨렸다. 도시에서 별을 본다는 것은, 체제의 균열을 목격하는 일과 비슷했다.
“여기요.”
레오가 작은 금속상자를 들고 왔다. 안에는 조그만 유리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구슬에는 얇은 전선이 감겨 있었고, 손바닥만 한 배터리와 연결돼 있었다.
“가짜 별이에요.”
그는 옥상 난간 곳곳에 구슬들을 붙이며 말했다.
“진짜 별을 기다릴 수 없다면, 잠깐 동안의 하늘쯤은 우리가 만들 수 있겠죠.”구슬들이 하나둘 살아났다. 전기벌레처럼 깜빡이는 빛들이 둔탁한 건물 벽에 반사를 만들었다. 엘라는 그 빛의 흔들림을 오래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건 빛인지, 아니면 자신의 호흡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젯밤 질문, 기억합니까?” 레오가 물었다.
“금지된 것이 진짜일 때가 있다는 말?”
“네.”
“그럼 당신은 오늘, 거짓을 만들었네요.”
엘라는 구슬을 가리켰다. “가짜 별이니까.”
“맞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진짜냐 가짜냐로만 세상을 구분하죠. 저는 때때로, 어떤 거짓은 진실에 닿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위험한 생각이에요.”
“위험하지 않은 진실이 있습니까?”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젯밤과 달랐다. 더 피곤했고, 더 단단했다. 엘라는 갑자기 그 미소 뒤편을 보고 싶어졌다. 미소의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 오래된 상실, 혹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소망 같은 것들.
“교육관.”
그가 그녀를 직함으로 불렀다.
“오늘 아이가 묻더군요. 왜 노래를 배우지 않냐고.”엘라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는 걸 느꼈다.
“…그걸 어떻게?”
“나는 감정 파형을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질문도 파형을 남겨요.”
“아이들의 호기심을 감정으로 분류하지 마요.”
“호기심은 감정이 아닌가요?”
“여기서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습니까? 여기서, 아니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엘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옥상 아래, 순찰 드론의 날갯짓 소리가 가까워졌다. 정전으로 서성이는 그 기계는 어둠 속에서 더 느리게 움직였고, 그 느림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제공했다. 숨을 고르고, 두 사람은 난간 안쪽으로 몸을 낮췄다. 레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규칙 하나 만들까요? 우리가 만날 때마다, 한 가지씩 서로의 규칙을 바꾸는 겁니다. 아주 조금씩.”
“무슨 규칙부터?” 엘라가 물었다.
“예를 들어, ‘밤에는 하늘을 보지 않는다’ 같은 규칙을 ‘밤에는 하늘을 한 번은 본다’로 바꾸는 거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승인이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웠지만, 체념이 처음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올라가만 하던 체념이, 내려가기로 마음먹는 순간처럼.
바람이 불었다. 구슬 별 몇 개가 깜빡이며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엘라는 그 깜빡임을 눈으로 좇다가, 레오의 시선과 부딪혔다. 불빛이 그의 눈 안에서 작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 그녀는 아주 익숙한 무늬를 찾았다. 오래전, 어머니가 밤마다 불던 휘파람의 리듬. 짧고 길게, 다시 짧고. 엘라는 그 리듬을 혀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감정검열국이 삭제하지 못한 아주 작은 습관.
“이 도시에서, 누군가의 눈안에 별이 뜨는 걸 본 게 오랜만이라서요.”
그녀가 말했다. 말이 너무 멀리 나간 건 아닌지,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레오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별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마도… 보는 사람에게서.”
“그렇다면 오늘 밤의 하늘은, 당신 것이네요.”그때, 옥상 출입문이 덜컥거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낮추었다. 문틈 아래로 손전등 빛이 던져졌다. 순찰대였다. 정전 시 야간 외부 체류는 금지였다. 엘라는 숨을 길게 참았다. 감정계수 장치가 손목에서 작게 진동했다. 불안. 허용치를 넘기지 않으려면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녀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호흡법을 떠올렸다. 숫자를 세고, 정지하고, 내쉬는 반복.
손전등 빛은 구슬 별들을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갔다. 빛은 작은 별들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아마 순찰대에게는 그냥 고장 난 광고전구로 보였을 것이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혔다. 도시의 밤이 다시 그들의 것이 되었다.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하죠?”
안도의 웃음이 지나간 뒤, 엘라가 물었다.
“감정을 숨기고, 또 드러내고. 결국 잡히면 사라질 텐데.”레오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도시 아래쪽, 어두운 도로를 훑었다. 신호 없는 사거리 위에 몇몇 그림자가 멈춰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제에 순응하는 감옥의 일과표. 그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나는 실패한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사람. 그 이후로, 무엇이든 조금씩 바꾸기로 했어요. 전부 한꺼번에 뒤엎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나사 하나의 방향이라도.”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고백처럼 울렸다. 엘라는 그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부분에 오래 멈췄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아직 묻지 않을 감정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교사로서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답을 찾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처럼, 어른에게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럼 내 차례네요.”
엘라가 말했다.
“당신의 규칙 하나를 바꿀 차례.”
“기꺼이.”
“다음번에 만날 때, 나는…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나요?”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필요하다면, 아주 능숙하게.”
“좋아요. 그 거짓말을, 나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왜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때가 올 테니까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진실을 잠깐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때.”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구슬 하나가 그의 어깨에 떨어져 작은 빛을 튕겼다. 엘라는 그 빛을 손으로 잡듯 붙들었다. 불가능한 동작. 하지만 그 불가능함이 그녀의 손끝에서 잠깐 가능처럼 느껴졌다.
“내일, 교육관 점검이 있을 거예요.” 엘라가 말했다.
“관리관들이 교실의 감정감지기 민감도를 두 배로 올릴 겁니다. 아이들은 더 조용해질 테고, 질문은 사라지겠죠.”“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레오가 구슬을 다시 난간에 붙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냥 다른 형태로 나타나죠. 침묵처럼, 혹은 장난처럼, 혹은… 게임처럼.”“게임.” 엘라는 그 단어를 되뇌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방식이에요. 왜냐면, 게임은 아이들의 편이거든요.”“그럼 이번엔 우리가 아이들의 편이 되는 겁니다.”
레오가 웃었다.
“규칙 두 번째. 아이들이 묻지 못하면, 우리가 대신 묻는다.”그 말은 약속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옥상 가장자리에서 바람이 그 약속을 훔쳐가려 들었다. 그러나 바람도 그 뜻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가만히 내려앉았다.
멀리서 전기가 다시 살아나는 소리가 났다. 도시의 등뼈로 전류가 돌아왔다. 가로등이 켜졌고, 전광판이 눈을 떴다. 구슬 별들은 더 이상 밤하늘의 자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레오는 장비를 재빨리 정리하며 엘라에게 손짓했다.
“먼저 내려가요. 계단참에서 30초 간격.”
“규칙 셋. 오늘은 당신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왜죠?”
“누군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흔적이 생기니까.”엘라는 난간을 넘어 내려갔다. 계단참마다 규격화된 광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표정 없는 내일, 안전한 우리.’ 그녀는 그 문구가 오늘만은 조금 덜 설득력 있다는 걸 느꼈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발걸음의 방향이 생겼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감각.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집으로 돌아오자, 벽면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졌다. ‘정전 안내: 시민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단조로운 목소리가 규정된 속도로 들려왔다. 엘라는 라디오의 볼륨을 최저로 낮추고, 서랍 가장 밑칸을 열었다. 아주 오래된, 사라져야 했던 물건을 꺼냈다. 종이. 그 위에 연필로 둔탁한 점을 찍어들 갔다. 별자리 지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의 교안.
그녀는 종이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별을 그렸다.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이름을 적었다.— ‘레오의 별’.
잠시 망설인 끝에 지워냈다. 이름은 위험했다. 대신 작은 표시만 남겼다.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그러나 그 사람은 알아볼 수 있을 작은 표시.
그날 밤, 엘라는 창문을 조금 열고 귀를 기울였다. 도시가 다시 규정된 소음을 되찾는 동안,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람에게만 들려주는 노래. 어머니의 소리였는지, 레오의 소리였는지, 혹은 자신의 가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소리가 그녀를 앞으로 밀었다는 사실뿐.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며 엘라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규칙을 하나 배우겠습니다.”아이들의 눈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감정감지기는 천장에 매달린 채 제 역할을 했다. 엘라는 분필을 들어 칠판에 천천히 적었다.
— ‘질문을 숨겨서 말하기’.
아이들의 눈 사이에 작은 빛이 켜졌다. 로안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질문을 어떻게 숨기나요?”엘라는 답 대신 미소를 아주, 아주 작게 지었다. 감정계수는 0.04. 허용치 이내. 그 미소를 보며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웃을 줄 모르는 얼굴들 속에서, 무엇인가 가볍게 흔들렸다. 규정 각도를 벗어나지 않는, 그러나 규정이 포착하지 못하는 방향의 흔들림.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벽면 스크린에 감정검열국의 새 공지가 올라왔다.
— ‘D-구역 감정 민감도, 120% 상향 조정.’
그 밑에, 관리관의 서명이 또렷했다. 하르브. 그녀는 처음 보는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날이 갈수록 이름들은 짧아지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발음만 해도 혀끝이 베일 것 같은 이름. 썩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교무실에 돌아오려던 순간, 구석 탁자 위에 작은 금속구슬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놓인, 광택 없는 작은 별. 엘라는 그 구슬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감정계수 장치가 미세하게 떨렸다. 0.05. 허용치 이내. 그녀는 아주 조용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아이들의 숙제로 ‘사물의 다른 이름을 써오라’고 냈다. 예를 들면, ‘창문’의 다른 이름은 ‘빛의 문’, ‘분필’의 다른 이름은 ‘작은 겨울’ 같은 식으로. 감정어를 쓰지 않았기에 규정 위반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오늘 숙제는 사실 질문이라는 것을. 그것도 숨겨진 질문이라는 것을.
창문 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잿빛이 다시 도시를 덮었다. 엘라는 마음속으로 한 문장을 천천히 되뇌었다.
— 오늘 밤, 별은 어디서 올 것인가.
그리고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어떤 밤의 별은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손바닥에서, 누군가의 눈 속에서, 누군가의 거짓말에서조차 별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진실은 때때로 그 별빛을 따라왔다.
엘라는 창을 닫고 불을 껐다. 어둠이 방 안을 채울 때, 그녀의 눈 속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한 별빛이 반짝였다. 그 별빛은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나란히 걷는 길. 질문을 숨기고, 진실을 나중에 꺼내기 위해 서로의 규칙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길.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파멸일까, 아니면 구원일까. 엘라는 정답 대신, 한 가지의 약속을 선택했다. 내일도 아이들에게 질문을 가르칠 것. 그리고 내일 밤, 누군가와 하늘을 한 번은 볼 것.
그녀는 미소를 아주 작게, 감지기를 속일 만큼만 지었다.
감정계수 0.04. 허용치 이내.
하지만 허용치의 경계선 위에서, 삶은 처음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반응형